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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다, 액트업, 팔레스타인에 해방과 자유를

2026년 7월 2일

이문우


1.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다.

2026 Queer Cinema for Palestine 서울 상영회 포스터 ⓒ 2026 Queer Cinema for Palestine 서울 상영회.



팔레스타인을 위한 퀴어시네마(Queer Cinema for Palestine, 이하 QCP)는 전 세계 예술가들과 예술단체들이 함께 모여 이스라엘의 점령과 학살에 맞서고 영화제라는 공간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는 실천이다. 2021년, 300명이 넘는 퀴어 영화인들이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요청에 응답하며 핑크워싱을 일삼는 텔아비브 국제 LGBT 영화제를 보이콧하기로 선언하며 시작되었고, 올해는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다(No Pride in Genocide)”라는 기획으로 60개국에서 300개 이상의 상영회가 개최되었다.1) 한국에서도 2021년, 2023년, 2025년에 QCP가 진행되었고, 올해에는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 서울인권영화제, 퀴어영화모임 헝클, 해방을 꿈꾸는 씨네클럽의 공동주최로 제4회 QCP가 진행되었다.


제4회 QCP는 〈메시지 A Message〉(2026), 〈휴전 Ceasefire〉(2025), 〈경제적 자립을 위한 5개년 계획 The 5-Year Plan for Financial Independence〉(2025), 〈돌아갈 때까지 Until We Return〉(2025),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 We Will Haunt Your Archive〉(2026), 〈쏘리 Sorry〉(2024) 여섯 편의 단편 영화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여섯 편의 상영작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각국에서 연대하고 있는 퀴어들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뿐 아니라,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영화들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메시지〉, 〈휴전〉과 함께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를 중심으로, 올해의 주제와 연결되는 핑크워싱의 문제를 통해 팔레스타인 해방이 어떻게 우리 모두의 해방과 연결되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2. 매끄러운 아카이브에 글리치를 만들기: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긍심, 저항과 소음2)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 스틸컷 ⓒ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 Teodor Vladár, 2025.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는 퀴어 운동의 메카인, 카스트로 거리에서 있었던 과거 액트업 운동의 푸티지와, 2023년이라는 동시대의 시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퀴어 운동의 푸티지를 겹쳐 놓는다. 이와 같이 과거와 현재, 역사와 지금의 두 시간을 교차하면서 감독은 과거, 현재, 미래의 퀴어들의 연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때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글리치(glitch)라는 현상, 그리고 감독이 활용하고 있는 Glitch Femisnm: A Manifesto(이하 글리치 페미니즘)3)의 문구들이다.


이 영화는 글리치라는 영화 속에서 기계의 오작동, 화면의 잡음과도 같은 영상 속 픽셀의 깨짐 현상을 의도적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글리치 페미니즘의 일부 문구들을 발췌해서 활용하고 있다. 사실 글리치 페미니즘은 유색인이자 여성, 그리고 퀴어인 레거시 러셀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자신이 살던 곳에서 점차 유색인 커뮤니티와 혼합 공동체가 사라져가고 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으로서 감각하는 한편,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디지털 공간에 주목하게 된 자전적 이야기로 시작한다. 글리치 페미니즘을 통해 러셀은 이분법적 젠더 체계에 오류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글리치를 의미화하고 선언한다.4) 그렇기 때문에 퀴어 운동의 역사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역사를 겹쳐 놓는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가 글리치 페미니즘의 선언들과 명확히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글리치 페미니즘이 글리치를 오류를 비롯해 거부, 유령, 바이러스, 리믹스, 생존과 같이 선언할 때,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 속의 글리치는 영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에는 글리치 페미니즘에 나오는 글리치의 의미들을 모아 중간중간 글리치를 의미화하는 문장들을 삽입하는데, 이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A glitch is an error, a mistake, a failure to function.
A way to create space through rupture.
A disruption. A form of refusal.
A glitch is an activist prayer.
A call to action.
A survival mechanism.
Glitch moves, but glitch also blocks.
Glitch prompts and glitch prevents.
With this, glitch becomes a catalyst, opening up new pathways, allowing us to seize on new direction."


"글리치는 오류이자 실수이며, 기능의 실패다.
단절을 통해 공간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교란이자, 거부의 한 형태다.
글리치는 활동가의 기도다.
운동을 향한 요청이다.
생존의 기제다.
글리치는 움직이지만, 동시에 가로막는다.
글리치는 촉구하고, 동시에 방지한다.
이로써 글리치는 기폭제가 되어 새로운 경로를 열어젖히고, 우리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번역은 인용자)


곧 글리치 페미니즘에서 선언하는 바―오류, 실수, 기능의 실패, 단절을 통한 공간의 생성, 파열, 교란, 거부, 활동가의 기도, 운동을 향한 요청, 생존의 기제 등―와 이 영화에서 활용하는 글리치의 의미는 맞닿으며, 이를 통해 이 영화에서 글리치는 기폭제 역할을 하며, 새로운 경로를 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우리는 카스트로 거리에서의 운동의 역사와 현재를 잇는 이 영화의 작업이 과거를 현실에 접촉하게 하고 마찰시키면서 미지의 작용을 활성화시켜 미래라는 새로운 경로와 방향을 만들어낸다는, 이 영화의 전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이때 이와 같은 전망은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인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글리치 페미니즘에서 글리치를 ‘리믹스’로 선언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다.


"To remix is to rearrange, to add to an original recording. The spirit of remixing is about finding ways to innovate with what’s been given, creating something new from something already there. (…) Glitch carries a technology of remix within its code. (…) one must innovate, encode, engineer the error into the machine, as a remix rendering the machine unrecognizable to itself, prompting its failure as a radical act.5)"


"리믹스란 원본 녹음물을 재배열하고 그 위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을 의미한다. 리믹싱의 정신은 주어진 것으로 혁신할 방법을 찾고,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있다. (…) 글리치는 그 코드 안에 리믹스의 기술을 담고 있다. (…) 리믹스를 통해 기계를 스스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들고 기계의 실패를 급진적인 행위로 유도하면서, 혁신하고, 인코딩하며, 기계 내부에 오류를 설계해야 한다." (번역 및 강조는 인용자)


이처럼 글리치를 리믹스로 선언하는 글리치 페미니즘을 영화와 연결할 때, 과거의 푸티지, 녹음물에 현재의 시간을 더하고 재배열하며 글리치를 발생시키는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는 액트업의 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를 혁신하면서 퀴어 운동에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운동의 의미를 더하고,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퀴어 운동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글리치라는 영상적 효과와 선언문의 발췌를 바탕으로 이 영화가 혁신과 창조를 통해 미래라는 시간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감독의 나레이션은 여기에 글리치의 의미를 더 강하게 부여한다. 영화는 푸티지의 영상이 깨져나가는, 글리치되는 화면 위에 감독의 나레이션을 겹쳐놓는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새겨지는 나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Our voices will be linger bouncing between the corners of 18th and Castro long after we are gone, Our glitched faces and bodies will haunt your Archive long after we’re gone.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18번가와 카스트로에 남아 거리를 맴돌 것이다. 부서져 버린 우리의 얼굴과 몸은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너희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6)” (강조는 인용자)


이 나레이션은 결국 화면 위에 글리치로 나타나는 얼굴과 몸이 사라진 후에도 기억에 유령처럼 남아 당신들의 아카이브를 맴돌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 조각조각 깨져 나타나는 얼굴과 몸(glitched faces and bodies)이라는 표현은 마음 한편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속에서 파편화되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몸7)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나는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를 통해 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의 존재와 오랜 역사를 지워버리면서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와 집단학살이라는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어 점령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이 구성해 온 매끈한 역사의 아카이브에 파열을 내고 간섭하는 얼굴과 몸을 읽었다. 어떤 과거와 현재의 연결, 어떤 아카이브는 그럴듯해 보이는 서사 속에서 매끄럽게 그 역사를 구축한다. 마치 성경이라는 오랜 구전을 이어 과거 자신들에게 속했던 자신들의 땅을 찾아온 것이라고, 팔레스타인의 땅을 빼앗고 점령을 시작한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역사처럼. 이 영화는 이런 매끈한 아카이브의 구성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겹쳐놓으며 만들어지는 잡음, 비록 깨져나갈지라도 매끄러운 아카이브를 유령처럼 맴돌며 저항하고 소음을 만들어낼 얼굴과 몸을 보여주는 이 영화 속 장면들은, 감독이 말하듯 강한 잔상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새겨진다.


그렇게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는 아카이브를 맴돌며 머무는 조각난 얼굴과 몸의 유령을 통해 그 매끈한 아카이브의 작동에 실패와 균열을 만들어내면서, 카스트로 거리에 존재했고, 또 일어나고 있는 두 해방운동의 흐름을 리믹스하며 급진적인 행위의 새로운 길을 열어내면서, 곧 퀴어 운동과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이 만나는 새로운 경로를 열어내면서 미래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다.



3. 핑크워싱(Pinkwashing)을 거부하기: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우리 모두의 해방이 될 것이다



〈메시지〉 스틸컷 ⓒ 〈메시지〉, Mama Ganuush, 2026.



이번 상영회를 구성하는 여섯 편의 영화 중 첫 작품인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로 시작된다. “나는 팔레스타인인이자, 트랜스다. 그리고 나는 내 동지들을 학살하는 무기로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다(I am Palestinian and I am trans, and I will not be weaponized for the genocide of my people).”8)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팔레스타인을 위한 연대와 활동의 기록을 담은 이 영화를 여는 감독의 외침을 들으며 나는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다”라는 이 상영회의 주제를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이번 QCP의 기획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집단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리고 정당화하는 핑크워싱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상영회의 문을 열며 이번 QCP의 기획을 소개하는 가디르 샤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국제적인 이벤트는 윤리적 대안이자 거부의 몸짓입니다. 무지개 깃발이 집단학살을 덮어버리는 것을 거부하며, 핑크워싱이 아파르트헤이트와 인종 청소, 그리고 점령을 정당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은 퀴어 커뮤니티에 거래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너희를 드러내 주는 대가로, 자신들의 만행을 방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거부했고, 여러분 또한 거부하였습니다. 프라이드는 집단학살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일부만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점령당하고 폭탄에 죽어갈 때, 자유와 프라이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9)


핑크워싱10)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문화를 동성애혐오적인 문화로 규정하고 야만과 비문명의 위치로 격하시키며, 이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이미지를 LGBT 친화적인 국가로 구축하면서 팔레스타인의 퀴어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위치 짓는 담론이다. 이처럼 서구의 LGBT 권리 담론, 곧 ‘퀴어들도 정당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권리 담론과 공명하고 이를 활용하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을 정당화해 왔고, 이는 2001년 9월 11일 이후 세계화된 이슬람 혐오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11)


핑크워싱의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로 “이스라엘엔 사랑의 경계가 없다”, “텔아비브는 세계에서 가장 큰 프라이드 퍼레이드 중 하나를 개최한다”라는 식의 문구를 활용하는 광고 캠페인이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텔아비브를 분리하면서 퀴어 친화적인 공간으로 텔아비브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관광 산업의 생산을 활성화하며 정상화해 오고 있다. 이와 함께 그들은 LGBT 권리 담론을 통해 핑크워싱을 활용하며 정치적 자원과 경제적 자본의 투자를 이끌어낸다.12)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는 전쟁과 집단학살 상황13)이 보여주듯, 이스라엘의 가장 큰 재정적 후원자이자 제국주의적 공모자는 미국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넘어 서구의 권리 담론에 공명하는 유럽과 북미 퀴어들에게 어필함으로써 ‘퀴어에게 친화적인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을 돕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며 투자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구조 속에서 제국주의적 공모를 도모한다.


한편, 팔레스타인인이자 트랜스로서 동지들을 학살하는 무기로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외침에 이어 흑인, 유색인 동지들을 노예화하는 무기로, 유대인 커뮤니티가 마주하고 있는 반유대주의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그리고 전 세계의 학생들과 시민들의 자유를 탄압하는 무기로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메시지〉는 핑크워싱이 어떻게 섹슈얼리티와 젠더뿐 아니라 인종, 자유를 비롯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다양한 문제와 교차하며 얽혀있는지 보여준다.


자스비어 K. 푸아는 핑크워싱이 제국주의적, 인종적, 국가적 폭력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명분 중 하나라는 측면에서 오랜 역사 속 여성 문제와 만나고 있다고 말한다. 곧 핑크워싱은 가야트리 스피박이 비판했던, 남아시아 식민 지배의 역사 속에서 식민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정당화했던 여성 구원의 서사와 맞닿는다. 푸아는 스피박의 유명한 격언을 인용해 “브라운(brown) 남성들로부터 브라운 여성을 구원하는 백인 남성들”이 식민지 기획 속에서 반향을 일으켰다고 말하며, 여성 문제가 자유주의적 선교 서사의 설계로서 활용되었다고 지적한다. 그가 스피박의 글을 통해 비판하는 것은 식민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진보의 자리에 위치시키면서 억압적인 가부장적 문화 관행이 전통으로 남아 있는 남아시아에서 선주민 여성들을 구원하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는 것이다.14) 이제 이와 같은 스피박의 격언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이어지고 보충된다. “백인 퀴어(퀴어 남성?)들이 브라운 이성애자들로부터 브라운 동성애자들을 구원한다(White queers(queer men?) saving brown homosexuals from brown heterosexuals).” 푸아는 이를 동성애자 문제라고 명명하며, 동성애자 문제가 과거의 여성 문제를 보충하며 연장하고, 그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한다.15)


이처럼 한 측면에서 핑크워싱이 여성의 문제와 만나고 있다면, 다른 한편에서 핑크워싱과 교차하는 문제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 존재하는 장애의 문제다. 이스라엘의 또 다른 핑크워싱 전략 중 하나는 ‘중동에서 유일하게 게이 장교가 복무할 수 있는 국가’가 이스라엘이라는 유명한 광고 캠페인이다. 푸아는 이스라엘 방위군(IDF) 내 동성애 합법화, 직장 내 차별 금지 조항, 그리고 기타 수많은 입법적 변화로 1990년대가 이스라엘의 ‘게이의 10년(gay decade)’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16)



“Where In The Middle East Can Gay Officers Serve Their Country?” 광고 포스터 “Where In The Middle East Can Gay Officers Serve Their Country?” 광고.
ⓒ 레딧 r/PropagandaPosters 페이지.17)



푸아가 이때 주목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 중에서 국가에 의해 주목받고 보호받는 장애가 주로 이 IDF 재향 군인들, 팔레스타인의 집단학살에 가담한 군인들의 장애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힐라 라몬-그리스펀은 1990년대 후반까지 이스라엘의 장애 입법이 주로 장애 수당 및 혜택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권과 평등보다는 자선의 담론에 기초했고, 장애인 권리 입법이 대체로 비일관적이고 잘 지켜지지 않거나 집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18) 결국 그 안에서 국방, 그리고 노동이라는 분야, 국가에 생산적으로 기여한다고 여겨지는 역할 속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이 덜 낙인찍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서로 다른 세 장애인 집단의 분할이 형성되고 강화된다. 사기트 모르는 다음과 같이 쓴다. “IDF 장애 재향 군인이 맨 위에 위치하고, 산재 장애인이 중간에 위치하며,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맨 아래에 위치했다.”19)


푸아는 이처럼 장애인 커뮤니티가 분할되며 장애인을 위한 전반적인 권리 확보는 점점 지연되는 한편, 이스라엘이 핑크워싱을 통해 스스로를 다양성을 포용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위치시키는 층위 아래에서 오직 예외적인 형태의 장애 지원만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외성은 다문화 국가라는 외피 속에서 은폐된다. 이때 예외적인 형태의 장애란 사회적 영광, 광범위한 혜택, 강력한 조직, 강력한 정치 로비 측면에서 가장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애로 IDF 재향 군인의 장애일 것이다. 벤-모세를 인용하며 푸아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력한 장애인 단체인 장애 재향 군인 협회는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장애인 시위를 전적으로 지지한 적이 없으며, 오직 재향 군인만을 위했고, 스스로를 더 큰 장애인 커뮤니티의 일부로 보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받는 막대한 혜택을 다른 장애인들에게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기도 했다고 말한다.20)


이처럼 핑크워싱이 이스라엘에 존재하는 장애인 커뮤니티를 분열시키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기만적 다문화주의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또 다른 문제는 이스라엘이 전쟁 부상으로 인한 장애를 활용해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아는 IDF 군인들의 장애가 이스라엘에 방어적 메커니즘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곧, 일어날 수 있지만 대개는 일어나지 않는 폭격으로 인해 발생할 장애, 미래의 장애가 점령을 지속적으로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언론 또한 이와 같은 서사 속에서 장애를 도구화하며 점령에 복무한다.21)


이와 같이 핑크워싱의 문제가 퀴어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집단학살의 정당화를 위해 사용되는 수단임을 넘어, 전 세계의 제국주의적 공모와 여성 문제, 그리고 장애 문제와 교차하며 얽혀있듯,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집단학살의 문제는 여러 억압의 층위, 곧 인종, 젠더, 계급, 문화, 교육 등의 문제와 교차적으로 얽힌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영회는 퀴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영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상영회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한 퀴어들과, 그에 연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작업과 더불어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이야기,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를 담은 작업을 함께 보여준다.


〈휴전〉은 지금 이 순간,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예술과 문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중심인물, 나우라스 라셰드는 문화와 예술을 바탕으로, 워크샵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위한 해방운동을 실천한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그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간으로서 감정과 고통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같은 공동체로서, 친구로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법으로 그가 생각하는 것은 문화와 예술을 통한 교류, 그리고 교육이다. 그래서 그는 아랍어를 통한 예술 워크숍을 열고, 운동의 현장에서 함께 모인 사람들과 답케(Dabke)22)를 알려주며 다양한 사람들과 그를 나눈다. 그는 답케가 팔레스타인 방식의 연대라고, 자신들이 말하고 소리치는 언어라고 이야기한다. 〈휴전〉이 보여주듯이, 문화는 이스라엘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술을 통해, 문화를 통해, 그리고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생존과 해방을 외쳐왔다.


연대 집회와 직접행동에 참여하지 못할 때, 나는 종종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것은 팔레스타인을 위한 해방운동을 위해 모금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보태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실천은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보이콧‧투자 철회‧제재) 운동에 기반할 것이다. BDS 운동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비롯해 그에 대한 제국주의적 공모와 연루를 끊어낼 수 있는, 우리가 우리의 자리에서 연대할 수 있는 행동과 실천의 방법을 제시해 준다. 이스라엘의 피 묻은 장학금을 거부하는 이스라엘 학술 보이콧23)이나, 핑크워싱과 같은 방식으로 문화를 통해 이스라엘의 점령과 집단학살을 가리는 아트워싱에 대한 반대운동에 연서명으로 동참하는 행동24)도 BDS 운동에 기반한다. 나는 BDS 운동에 동참하고, 팔레스타인의 소식에, 이 연대의 목소리들에 가능한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면서 종종 글을 통해서나마 연대의 목소리를 공유하려고 한다.


2024년 마주쳤던 황정은 작가의 글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 있다.


“선생님, 저는 굴뚝에 올라간 사람을 오래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이따금 지나가야 하는 거리에 그 굴뚝이, 담장 안에 솟아 있었습니다. 세상에 할 말이 있어, 세상이 꼭 들어야 하지만 들어주지 않는 말을 하러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거기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밤이 오면 굴뚝 위에선 아래쪽이 어떻게 보일지, 누군가 불을 켜 두었을지, 저 위에서 센 바람을 어떻게 맞을지, 한여름 볕에 그늘 한 점은 어떻게 마련되어 있을지, 그가 겨울 추위를 어떻게 피하고 있을지를 걱정하면서도 저는 고개를 젖혀 바라보거나 지나가거나 했습니다. 그가 굴뚝에서 426일이나 버텨 세계 최장기 굴뚝 농성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동안, 다양한 이가 그의 굴뚝 곁으로 모여 그의 말을 세상으로 확성했습니다. 그가 거기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굳이 담장을 넘어 그 곁으로 가고, 누군가는 지나가거나 무지라는 형식으로 부재합니다. 그러므로 그 높은 데 올라간 사람은 홀로 고립된 이가 아니라 수많은 ‘나’의 연대와 ‘나’의 부재로 둘러싸인 이였습니다. 어떤 이가 어떤 장소에서 고립되어 있다면 우리 각자는 늘 연대로든 부재로든 그 고립의 자리에 이미 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광경을 오늘 가자를 통해 봅니다. 거기에 누가 있습니까. 어떤 얼굴로 모여 있습니까. 화기뿐만 아니라 굶주림이 무기로 사용되는 곳, 인간 중에 인간 아닌 존재로 살해당하고 있다는 자각과 절망이 무기로 사용되는 곳, 거기에 구호품을 전달하러 죽음을 무릅쓰는 사람의 얼굴로, 사람들을 돌보러 들어가는 의료의 얼굴로, 죽은 아이를 싸맨 가느다란 꾸러미를 보고 우는 얼굴로, 하마스가 무엇이냐고 묻는 얼굴로, 먼저 시작한 쪽이 어느 쪽인가를 묻는 얼굴로, 거기가 너무 멀고 우리의 힘이 작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얼굴로, 너무 멀고 너무 달라 우리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얼굴로, 사망자들의 이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들은 이의 비명에 붙들리는 얼굴로, 너무 고통스러워 외면하는 얼굴로, 모른다고 대답하는 얼굴로, 이 제노사이드를 멈추라고 말하는 얼굴로, 무심히 지나가는 얼굴로, 우리는 모여 있습니다. 훗날 역사에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로 틀림없이 명명될 이 시간을 우리가 함께했으며, 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잊지 못하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폭격도 눈에 보이는 기아도 길바닥에 임시로 마련된 무덤도 없는 파주에서 이 글을 씁니다. 이것이 저와 가자 사이의 거리입니다. 굶주림과 폭격에 관한 당장의 공포 없이 이렇게 앉아 쓸 수 있을 만큼의 거리로 떨어져 있습니다만, 그곳이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그 장소에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우리 각자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가자의 고립에 우리는 이미 당도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얼굴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오로지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나는 이 학살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25)


2026년, 제4회 팔레스타인을 위한 퀴어시네마 상영회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글을 남기고 싶었다. 비록 가자와 떨어져 있을지라도, 나는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영화제라는 모임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여러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고, 나아가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사람들을 어떤 얼굴로 마주할지 고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 시간이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이고, 이 집단학살을 끊어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 또한 이 집단학살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침묵이 아닌 목소리를 통해, 연대를 통해 이곳저곳에서 계속해서 움직임을 만들어내면서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에 함께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해방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 모두의 해방이 이어질 것이다.


No Pride in Genocide, Act Up, Free Palestine.




이문우

퀴어영화연구그룹 구성원. 트위터에 올라오는 여러 사회문제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문제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장 활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고마움과 연결감을 느끼며, 나는 내 자리에서 글을 통해서라도 연대의 목소리를 공유하려 노력하고 싶다.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1) QCP를 소개하는 한국어 내용은 올해 한국에서 개최된 제4회 QCP 참가 신청 폼의 내용을 참고했다. QCP의 시작과 기획, 그리고 올해 상영작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웹사이트를 참고할 것. QUEER CINEMA FOR PALESTINE, “Film Program: Queer Cinema for Palestine 2026,” QUEER CINEMA FOR PALESTINE, accessed June 16, 2026, https://queercinemaforpalestine.org/2026/04/07/film-program-queer-cinema-for-palestine-2026/.
2) 2026년 6월 20일에 진행되는 〈Pride Noise for Palestine: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긍심, 저항과 소음〉의 행사 제목에서 가져왔다. 집단학살에 자긍심이 없다면, 우리의 자긍심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지워내고 임의로 구성한 매끄러운 역사, 그들만의 아카이브에 글리치와 잡음을 만들어내는 저항과 소음에 있을 것이라는 지점에서 〈당신 아카이브의 귀신이 되리라〉와 연결점을 지니는 행사라고 생각했다. 이 행사에 대한 주최 측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2026년 6월, 프라이드 먼스와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을 맞아 〈Pride Noise for Palestine: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긍심, 저항과 소음〉을 진행합니다.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국가 이미지를 내세우며 팔레스타인 점령과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폭력을 가리고 정당화하는 핑크워싱을 폭력의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습니다. 우리는 성소수자 친화적 이미지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핑크워싱 속에서 자긍심을 찾는 대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해방을 요구하며 팔레스타인을 위한 새로운 퀴어 자긍심을 찾습니다. 퀴어 자긍심은 거리에서 시작되었고, 거리에서 이어져 온 저항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퀴어 자긍심의 역사를 이어, 허울뿐인 자긍심에 저항하고 음악과 춤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새로운 퀴어 자긍심을 만들고자 합니다. 퀴어와 음악의 목소리가 한데 모이는 중심, 이태원에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며 소란을 일으킵니다.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퀴어 해방은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해방을 위해, 함께 춤춥시다.”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 「Pride Noise for Palestine: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긍심, 저항과 소음」,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 2026.6.8. 〈https://www.instagram.com/p/DZUHG6ExYmZ/?igsh=MXhxZHhtMjdkem5qdw〉 (검색일: 2026.6.16.)
3) Legacy Russel, Glitch Feminism: A Manifesto (London and New York: Verso, 2020).
4) Ibid., 6-14.
5) Ibid., 133-141.
6) 제4회 QCP 상영회의 한글 번역 및 자막 제작팀(허선민, 박지은, 이서영, 민희, 보라)의 자막을 인용.
7)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과 무자비한 폭격 속에서 신원을 알아볼 수 없게 시신이 손상되기 때문에, 팔, 다리 등 신체 일부의 피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나는 이 사실을〈그라운드 제로로부터〉(2024)에 수록된 〈아이들의 애니메이션 Soft Skin〉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는 총22편의 옴니버스 영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영화 제목을 기억하기 위해 다음의 글을 참고했다. 조혜영, 「숏폼, 다큐멘터리의 언어가 되다: 리뷰 〈그라운드 제로로부터〉」, 전주 리뷰, 2025.5.22. 〈https://jeonjureview.jeonjufest.kr/post/259〉 (검색일: 2026.6.22.)
8) 제4회 QCP 상영회의 한글 번역 및 자막 제작팀의 자막을 인용.
9) 제4회 QCP 상영회의 한글 번역 및 자막 제작팀의 자막을 인용.
10) 이하 핑크워싱과 관련된 내용은 자스비어 K. 푸아의 책 Right to Maim의 3장, “Disabled Diaspora, Rehabilitating State: The Queer Politics of Reproduction in Palestine/Israel”의 내용을 참고해 부분적으로 선별하여 요약한 것이다. 보다 상세하고 정확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할 것. Jasbir K. Puar, Right to Maim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17), 95-111.
11) Ibid., 96-97
12) Ibid., 95-97.
13)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전쟁임을 선명히 드러내면서 이란을 공습하고 중동 땅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개전 106일 만인 2026년 6월 14일(미국 동부 시각 기준), 도널드 트럼프가 “이란 이슬람공화국과의 합의가 마무리되었다”고 SNS에 공표하면서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은 중단되고, 레바논을 포함해 모든 전선에서 종전이 합의된 것으로 언론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2026년 6월 15일, 현재 이스라엘의 국가안보장관인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이스라엘의 안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은 이 종전 합의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와 나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시리아, 가자지구의 보안 구역(완충 지대)에 기한 없이 주둔하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으로부터 국경과 이스라엘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확한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과 집단학살을 포함해 중동 지역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휴전 선언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학살을 멈추지 않고 이어온 것은 반복되었고,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팔레스타인 점령과 집단학살을 비롯해 중동 점령에 미국이 가장 큰 공모자로 가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종전 협상이 사실상 미국의 종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이란과의 종전 협상에 대한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의 입장 발표에 대해서는 다음의 기사를 참고할 것. 전민구, 「세계 각국, 미·이란 종전 환영…막판까지 훼방놓은 이스라엘은 반발 [미·이란 종전]」, 중앙일보, 2026.6.1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6891〉 (검색일: 2026.6.16.)
14) 푸아는 식민 지배의 맥락에 더해 페미니즘의 전개 속 인종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시간이 흘러 백인 여성이 식민지 여성과 맺는 관계를 “백인 여성의 짐”으로 정립했던 19세기적 방식에서부터, 타자 여성의 근대성을 평가하는 중재자가 된 현대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여성 문제의 조건들이 다시 규정되었다고 말하며 20세기와 21세기의 격언은 다음과 같이 수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브라운 남성들로부터 브라운 여성을 구원하는 백인 여성들.” Puar, Right to Maim, 98-99.
15) Ibid., 98-99.
16) Ibid., 97
17) r/PropagandaPosters, ““Where in the Middle East can gay officers serve their country?”: Pro-Israel poster [2014],” reddit, 2027.6.25. accessed June 16, 2026, https://www.reddit.com/r/PropagandaPosters/comments/6jbi4t/where_in_the_middle_east_can_gay_officers_serve/.
18) Hila Rimon-Greenspan, “Disability Politics in Israel: Civil Society, Advocacy, and Contentious Politics,” Disability Studies Quarterly 27(4) (2007), accessed June 22, 2026, https://doi.org/10.18061/dsq.v27i4.47.
19) Sagit Mor, “Between Charity, Welfare, and Warfare: A Disability Legal Studies Analysis of Privilege and Neglect in Israeli Disability Policy,” Yale Journal of Law & the Humanities 18(1) (2006): 66.
20) Puar, Right to Maim, 104-108.
21) Ibid., 108-109.
22) 그는 답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답케를 해 볼 텐데요. 팔레스타인 방식의 연대죠. 춤 같은 건데… 저는 춤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단순한 춤이 아니거든요. 이건 언어예요, 우리의 언어. 우리가 말하고, 소리치는 방식이죠.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는 방식이죠. 또 우리는 인간이고, 우리가 이 땅과 올리브 나무에 연결되어 있고,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마을의 작은 돌 하나하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방식이에요.” 제4회 QCP 상영회의 한글 번역 및 자막 제작팀의 자막을 인용.
23)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은 2026년 6월 10일 ‘이스라엘 정부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을 규탄하는 학생 및 연대시민 연서명을 발표하며 “불법국가 이스라엘의 피 묻은 장학금 규탄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으며, 성명문 전문은 인스타그램의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 「불법국가 이스라엘의 피 묻은 장학금 규탄한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 2026.6.11. 〈https://www.instagram.com/p/DZcS_qDj_w6/?igsh=MW1kNGxlaW1jZXZkZg〉 (검색일: 2026.6.16.)
24) 202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예스! YES!〉에 대한 BDS 운동의 입장문, 그리고 퐁피두 한화 센터의 아트워싱에 대한 반대 성명서와 연서명이 이와 같은 행동에 해당할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예스!〉 상영 및 BDS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 그에 대한 국내외 영화제의 무지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는 2026년 6월 14일에 있었던 제4회 QCP 상영회에서 뎡야핑 활동가와 신은실 평론가가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줬으며,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웹사이트 내용 또한 참고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가자지구 홀로코스트 앞에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시대적 소명을 묻는다: 이스라엘 영화 〈예스!〉의 상영 철회를 촉구하며」, 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26.4.24. 〈https://pal.or.kr/wp/more-like-no-the-jeonju-international-film-festival-must-cancel-the-screening-of-israeli-film/〉 (검색일: 2026.6.16.)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웹사이트에서 BDS 운동의 시작점 및 의미, 공식 보이콧 대상, 현재 진행 중인 활동들을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퐁피두 센터 한화에 대한 보이콧 캠페인에 대한 연대 기자회견문도 확인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한화에 대항하는 국제행동주간: 6.4 서울 퐁피두센터 한화 보이콧 기자회견 〈철회하라, 한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26.6.5. 〈https://pal.or.kr/wp/%ed%95%9c%ed%99%94%ec%97%90-%eb%8c%80%ed%95%ad%ed%95%98%eb%8a%94-%ea%b5%ad%ec%a0%9c%ed%96%89%eb%8f%99%ec%a3%bc%ea%b0%84-6-4-%ec%84%9c%ec%9a%b8-%ed%90%81%ed%94%bc%eb%91%90%ec%84%bc%ed%84%b0-%ed%95%9c/〉 (검색일: 2026.6.16.)
25) 황정은, 「파주에서」, 리시올/플레이타임, 2024.3.25. 〈https://playtime.blog/2024/03/25/paju-city/〉 (검색일: 2026.6.19.)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다, 액트업, 팔레스타인에 해방과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