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40년대 할리우드 호러영화 속 퀴어 괴물:〈프랑켄슈타인〉(1931), 〈울프맨〉(1941), 〈드라큘라〉(1931)을 중심으로
2025년 7월 26일
김우진(우디)
들어가는 글
‘퀴어 괴물’1)은 해리 벤쇼프가 『벽장 속의 괴물』(1997)에서 사용한 용어로, 여기서 벤쇼프는 “호러영화에서 대부분의 괴물들은 그들의 “일탈적인” 섹슈얼리티에 의해 “퀴어 괴물”로 묘사된다”2)라고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고딕 소설3)의 영향을 받은 고전 호러/괴물 영화의 빌런을 ‘퀴어 괴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성애화된 커플이다. 이들(모두 또는 둘 중 하나)은 괴물이 욕망하는 대상이 되면서 그들의 이성애 관계에 위협을 받지만, 군중 또는 가부장을 대표하는 존재 덕분에 괴물을 무찌르고 안전하게 ‘퀴어한 경험’을 통과하여 규범적 이성애의 평형 상태를 회복한다.4) 이처럼 괴물은 이성애 규범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퀴어'하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치료되거나 파괴되어야 하는 존재로 재현된다.5)
한편, 이브 코소프스키 세즈윅은 『벽장의 인식론』(1990)에서 “사회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진짜' 게이 인구가 있다는 소수화 관점(minoritizing view)을 유지하면서 성적 욕망은 안정된 정체성에 대한 예측할 수 없이 강력한 용해 능력이라고 보는 보편화 관점(universalizing view)을 동시에 취한다.”6)라고 말하며, 동성애에 관한 두 가지 충돌되는 개념을 언급한 바 있다. 즉, 동성애는 이성애에 대한 고정된 소수의 타자라는 소수화 관점과 동성애는 성적 행위 연속체7)의 일부라는 보편화 관점,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벤쇼프는 호러영화의 괴물 역시 이와 비슷하게 충돌되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8)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같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은 비-괴물들(인간들)에 의해서 명백하게 구분되는 ‘소수'로 재현된다는 점에서 소수화 관점과 일치한다. 이러한 경우 괴물은 오로지 처단의 대상이며 괴물의 죽음과 함께 잠시 위기에 처했던 이성애 규범은 그 위상을 되찾는다. 한편,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의 괴물성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분명하게 ‘비-괴물'로 정체화하고 있는 경우에도 예외는 아닌데, 괴물화 과정에서 자기 부정이 극심할수록 오히려 괴물 영화라는 장르의 서사 구축에는 더 유리하다. 이때의 괴물은 단순히 다수의 인간으로부터 구분되는 소수가 아니며, 각 개인은 괴물 또는 인간으로 변화하는 연속된 과정 위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괴물성은 보편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보통 이성애 커플 중 한 명이 괴물화 과정에 놓이게 된다. 이때는 재빨리 변형의 근원이자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킨 원-괴물을 제거하여 괴물화 과정을 중단시키고 과정 중에 있는 인물을 회복시켜 이성애 커플의 재결합을 도모한다.9) 이미 괴물화 과정이 완료된 경우에는 보다 강력한 일종의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를 시도하거나 어쩔 수 없이 괴물이 되어버린 인물을 제거10)하여 이성애 규범의 균형을 사수한다. 둘 중 어느 관점을 그 기원으로 하든 이들이 이성애 규범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철저하게 파괴하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존재로 재현되는 한, 거기서 퀴어성을 포착하고 이들을 ‘퀴어 괴물’이라고 명명할 여지는 충분하다. 이하에서는 1930-4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호러영화 〈프랑켄슈타인〉(1931), 〈울프맨〉(1941), 〈드라큘라〉(1931)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중심으로 이들의 퀴어성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퀴어 괴물의 시간: 일탈과 지연
잭 핼버스탬은 ‘출생, 결혼, 재생산, 죽음’이라는 생애 경험 바깥에서 대안적인 시간성을 만들어내는 퀴어 하위문화에 집중하며 ‘퀴어 시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11) “시간에 대한 규범적 서사는 의존적인 아동기에서 결혼과 재생산으로 정의되는 독립적인 성인기로의 선형적 발달을 가정한다.”12) 가족과 양육, 상속을 중심으로 하는 시간 전통에서 삶의 목적과 행복은 언제나 나중에 있다. 그러나 AIDS 위기의 시기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퀴어 시간성은 나중이 아닌 ‘지금, 여기, 현재’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대안적인 시간을 모색한다. 미래의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해 현실의 희생도 감수하는 이성애 규범적 시간과 비교하면 퀴어 시간성은 낭비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직선적인(straight) 시간과는 달리 퀴어 시간성은 그야말로 이상(queer)하다.
호러영화 속 괴물 역시 이성애 규범적인 시간 바깥에 위치한다. 핼버스탬에 따르면, 이성애 규범적인 재생산의 시간은 여성의 생체 시계와 부르주아 전통, 그리고 결혼한 이성애 커플의 생애 계획에 의해 통제된다.13) 그러나 괴물은 여성의 몸을 경유하지 않고도 태어나며 이성과의 결합 없이도 재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시간 논리를 교란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괴물은 부르주아 계급과 이성애 커플에 대한 명백한 위협으로 출현한다. 가령,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결혼 당일 신혼부부의 방에 침입해 결혼식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울프맨〉에서 탈보트 가의 유일한 후계자였던 래리는 늑대인간이 됨으로써 스스로 귀족 가문의 대를 끊는다.
그뿐만 아니라 괴물은 '출생-죽음'이라는 시간의 흐름으로부터도 일탈하는 존재이다. 이들은 죽은 뒤에도 다시 살아나거나 영원히 죽지 않는다.14) 죽지 않는 괴물에게 대비해야 할 미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괴물은 밤의 거리를 배회하며 ‘지금, 여기, 현재’에 집중한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탄생보다는 죽음에, 낮보다는 밤의 시간에 기거하는 괴물의 시간성은 그러므로 퀴어하다.
결혼식 당일, 부부의 방에 침입한 괴물.
ⓒ 영화 〈프랑켄슈타인〉, 제임스 웨일, 1931.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창조하려는 헨리 프랑켄슈타인의 야망에 의해 탄생한다. 여성의 몸을 경유하지 않고 태어나는 괴물의 존재는 헨리의 가설 안에 잉태된 순간부터 이미 이성애 규범적 시간에 대한 명백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헨리는 이 새로운 실험에 몰두하기 위해 약혼자 엘리자베스와의 결혼도 미룬다. 엘리자베스는 약혼식 당일에도 헨리가 자신의 실험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괴물에 대한 그의 집착을 밝힌다. 이처럼 전통적인 재생산 방식에 도전하는 헨리의 가설은 결국 형태를 갖춘 괴물이 된다. 괴물은 갇혀 있던 그의 벽장에서 빠져나와 결혼을 앞둔 엘리자베스 앞에 나타난다. 신혼부부의 방으로 침입한 괴물은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와 명백한 흑백의 대비를 이루며 대립한다. 재생산 전통을 교란하는 괴물의 실체를 직접 목격한 엘리자베스는 쓰러지고 결혼식은 또 한 번 연기된다. 헨리는 “나의 끔찍한 창조물이 계속해서 살아 있는 한 결혼식도 없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결혼과 괴물이 서로 공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괴물은 헨리와 엘리자베스 커플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 전체의 재생산에 대한 위협이다. 괴물은 우연히 만난 소녀 마리아를 의도치 않게 살해한다. 괴물이 유발한 소녀의 죽음과 결혼의 지연으로 마을 전체의 재생산 중심적 미래는 당분간 유보된다.
헨리를 안고 풍차로 피신하는 괴물.
ⓒ 영화 〈프랑켄슈타인〉, 제임스 웨일, 1931.
이후 성난 군중에게 쫓기던 괴물은 무리에서 떨어진 헨리와 마주치지만 그를 죽이는 대신 기절 시켜 데려가는 편을 택한다. 횃불을 든 군중과 사냥개들이 추적하는 속도와 비교할 때 헨리를 안고 이동하는 괴물의 움직임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보통 사람의 10배에 달하는 힘을 가졌다는 괴물에게조차 일련의 탈주 시퀀스는 힘겹게 느껴진다. 군중의 움직임은 목적과 방향성이 명확하다. 괴물을 제거하여 마을의 안전을 확보하고 유보된 미래의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반면, 괴물은 단순히 살아남아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도망치지 않는다. 괴물은 도망치는 속도가 늦춰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헨리와 함께하고자 한다. 다시 깨어난 헨리가 도망치기 전, 마지막으로 대치하는 장면에서 풍차 안 회전하는 기계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응시하는 이들의 얼굴은 마치 헤어지는 위기 앞의 두 연인의 모습처럼 보인다. 급박한 상황에 삽입된 클로즈업은 장면의 시간을 늘리면서 긴장감을 이완시키고 관객이 이들의 얼굴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괴물을 단순히 본능에 충실한 폭력적인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 일련의 장면들은 특히 퀴어 관객들로 하여금 괴물에게 동일시할 수 있는 순간을 마련한다.
결국 성난 군중은 풍차에 불을 붙이고 괴물은 그 안에 혼자 남아 최후를 맞이한다. 이때, 불길에 휩싸인 채 돌아가는 풍차의 날개는 얼핏 십자가를 연상하게 만든다.15)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혔던 것처럼 괴물은 불타는 십자가 속에서 감히 신의 영역을 넘본 헨리의 죄를 대속한다. 괴물은 공동체의 희생양으로서 살해당하고 마을 공동체의 시계는 다시 이성애-재생산 중심적 시간에 맞춰 돌아간다. 기력을 차린 헨리를 뒤로 하고 그의 아버지는 ‘프랑켄슈타인 가문의 아들을 위해’ 증조할머니의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어 기념한다. 가문의 유산과 가족의 전통은 그렇게 이어진다. 한편,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괴물은 마을의 규범적 시간 밖을 배회하다 속편을 통해 부활한다. 이를 통해 괴물은 출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시간 경로에서 이탈한다.
〈울프맨〉의 주인공 래리 탈보트는 가문의 후계자였던 형이 사망하자 미국 생활을 접고 고향 웨일스로 돌아온다. 귀족 가문의 유일한 상속인이 된 청년 래리에게는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듯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서 보장된 미래의 안정성은 래리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탈보트 가문의 것이다. 대부분의 상속 서사가 그렇듯 래리는 먼저 자신의 적격성을 아버지에게 증명해야 한다. 상속인의 자격은 부계의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는지로 평가받는다. 미국에서의 삶이 어땠든 래리의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현재의 꿈과 관심사도 마찬가지다. 오직 중요한 건 재생산을 통해 확보될 가문의 미래이다.
탈보트 저택에 돌아온 래리는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아버지의 망원경으로 마을을 둘러본다. 망원경은 ‘지금, 여기, 현재’가 아닌 멀리 떨어진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때 래리는 우연히 골동품 가게에서 일하는 그웬을 포착하고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가문의 미래에 복무하기 위해서는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이성애 규범적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발견은 놀랍지 않다. 다만, 아버지의 렌즈를 통해 발견한 것이 과거의 오브제를 다루는 그웬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래리가 직접 가게를 찾아갔을 때 그웬은 그에게 늑대인간 전설을 들려주기도 한다. 오래된 물건을 거래할 뿐 아니라 마을에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를 재연하는 그웬에 의해 지나간 과거는 현재화된다. 그리고 유령처럼 과거의 전설로부터 귀환한 늑대인간의 출현으로 탈보트 가문의 미래는 점차 안정성을 상실한다.
래리 개인과 탈보트 가문의 미래를 위협하는 늑대인간이 로마니16)들이 야영하고 있는 마을 외곽 안개 낀 숲에서 출현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울프맨〉에서 로마니는 예언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타로와 손금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함께 읽는데 이때, ‘과거-현재-미래’로 분절된 시간의 경계는 무화된다. 래리는 그웬 그리고 그웬의 친구 제니와 함께 예언을 듣기 위해 로마니 야영지를 찾는다. 가장 먼저 점을 보게 된 제니는 남자 로마니 벨라17)에게 자신이 언제 결혼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벨라가 들여다본 제니의 미래에는 결혼 대신 늑대인간의 상징인 펜타클 즉, 죽음의 기호만이 존재한다. 결국 그날 밤 제니는 살해되고 제니를 도우려던 래리도 늑대로 변한 벨라에게 물리는 바람에 늑대인간으로의 괴물화 과정에 놓이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예언가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낮은 계급에 속하는 벨라에 의해 귀족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인 래리가 미래의 안정성을 상실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래리는 약혼자가 있는 그웬을 유혹함으로써 그들의 결혼을 방해한다. 그는 로마니들의 축제날 둘의 데이트에 동행하는가 하면 다툼이 있는 틈을 타 그웬에게 입맞춤을 시도한다. 이처럼 래리는 약혼 관계에 있는 그웬과 프랭크 사이에 반복적으로 끼어듦으로써 둘 사이의 미래를 지연시킨다. 한편, 결국 늑대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 래리의 눈앞에는 혼재된 ‘과거, 현재, 미래’가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이 몽타주 시퀀스 속에서 과거의 인물인 벨라, 제니의 모습과 함께 늑대 머리 지팡이 장식, 펜타클 기호, 투구꽃(wolf’s bane) 같이 래리의 미래를 암시하는 늑대인간의 상징이 오버랩된다. 이처럼 늑대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래리는 자신과 그웬 사이의 미래도 유보한다.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래리의 발.
ⓒ 영화 〈울프맨〉, 조지 와그너, 1941.
그 유명한 늑대인간 변형 시퀀스에서는 래리가 늑대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디졸브로 겹쳐지는데 이때 카메라는 래리의 발에 고정된다. 구두와 양말을 벗자 드러난 래리의 맨발은 점차 털로 뒤덮이더니 종국에는 늑대의 발로 완전히 변모한다. 귀족인 탈보트 가의 질서는 중절모부터 정장 구두에 이르는 래리의 복식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구두는 정제된 의복의 제유로서 아버지의 질서를 환기한다. 그런데 첫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래리는 처음으로 단정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서둘러 의복을 갖추고 낮 시간을 보내지만 이제 밤이 되면 래리는 어김없이 다시 맨발로 돌아온다. 구두를 벗고 맨발로 세상을 활보하는 밤은 래리에게 있어 그야말로 일탈의 시간이다.
아버지 존에 의해 의자에 묶인 래리.
ⓒ 영화 〈울프맨〉, 조지 와그너, 1941.
반복된 밤의 일탈로 위기감을 느낀 래리는 아버지 존에게 자신이 스스로를 늑대인간으로 정체화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존은 혼란과 두려움을 느끼는 래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이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래리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의자에 묶어둔다. 전환 치료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 이후 래리는 아버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 늑대인간으로 각성한다. 래리는 총을 들고 자신을 쫓는 프랭크 무리의 포위를 피해 그웬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래리는 지팡이를 든 존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 그웬은 자신의 약혼자인 프랭크의 품으로 돌아가고 존은 허탈한 표정으로 래리의 시신을 바라본다. 이성애적 욕망의 대상이었던 그웬을 공격하는 래리와 자신의 손으로 가문의 후계자인 아들을 처단하는 존의 결말은 늑대인간으로서의 래리가 분명하게 이성애 규범에서 이탈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백작은 자신의 피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뱀파이어를 만든다. 여성의 몸을 경유한 임신과 출산의 과정 없이 가능한 재생산의 방식은 이성애 규범성을 교란한다. 드라큘라 백작은 시워드 박사의 딸 미나를 유혹해 새로운 뱀파이어로 만들고자 하는데, 이로 인해 결혼을 앞둔 미나와 존 하커의 미래는 지연된다. 드라큘라 백작은 뱀파이어화가 완료되면 미나 역시 자신처럼 몇 세기에 걸쳐 살게 될 것임을 밝힌다. 이를 통해 미나는 점점 ‘결혼-출산-양육’의 재생산 중심의 미래와 예정된 죽음으로부터 멀어진다. 심지어 미나는 존에게 흡혈의 욕구를 느끼고 미래의 안정이 아닌 현재의 욕망을 위해 그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한편, 〈울프맨〉의 늑대인간과 마찬가지로 〈드라큘라〉 속 뱀파이어의 시간 역시 밤에 속한다. 드라큘라 백작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정반대로 흐른다. 그는 매일 해가 뜨면 관으로 들어가서 죽음과도 같은 잠을 청하고 밤에는 안개 낀 길거리를 활보한다.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 중에 있는 미나 역시 “밤이야말로 내가 정말 살아 있다고 느끼는 시간”이라고 말하며 밤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밤은 변신의 시간이기도 한데,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늑대와 박쥐로 형상을 전환한다. 그는 늑대의 모습으로 나타나 시종 랜필드를 호출하고 박쥐로 변해 희생자의 방 안으로 날아 들어간다. 밤이 되면 모습을 바꾸고 대상을 찾아 헤매는 드라큘라 백작의 모습은 보름달이 뜬 밤이면 울부짖으며 같은 종족을 부르는 늑대인간과 마찬가지로 퀴어의 모습과 얼마간 닮아있다. 낮 동안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퀴어들의 경우 밤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동질감을 느끼는 이들을 만날 수 있기에 종종 밤의 거리를 배회한다. 이에 규범적인 인생 경로를 충실히 따르며 미래를 대비하는 이들의 삶과 달리 퀴어의 삶은 종종 사치스럽다거나 심지어 낭비적이라는 혐의를 제기 받곤 한다.18)
1931년 작 〈드라큘라〉에서는 명시되지 않지만, 이후 영화나 시리즈에서 재현되는 뱀파이어들은 ‘늙지 않는다’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늙지 않는다는 건 곧 자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해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뱀파이어가 된 경우에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되기도 한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의 클라우디아나 〈안녕, 프란체스카〉(2005-2006) 시리즈의 소피아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한편, 영화 〈악마의 키스〉(1983)에서는 이처럼 지연된 성장과 노화가 한순간에 찾아오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젊음과 관능의 상징인 데이비드 보위의 모습이 순식간에 늙어버리는 시퀀스는 일반인과는 다른 뱀파이어의 기묘한 시간을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끊임없이 성장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퀴어 시간성과 궤를 같이한다. 늙지 않는 뱀파이어와 마찬가지로 퀴어는 종종 덜 성장한 존재로 간주되는데 결혼, 취업, 출산, 육아와 같이 일반적으로 어른스러움을 인정받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퀴어 괴물의 공간: 기묘한 벽장
퀴어 공간성 역시 퀴어 시간성과 마찬가지로 이성애-재생산 중심의 삶 바깥의 대안적인 삶의 실천으로 형성된다.19)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과 경계를 넘나드는 이동의 수행이 이루어지는 일탈의 공간은 이성애 규범을 위협하는 퀴어의 공간이 된다.
호러영화 속 괴물의 공간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성애 규범적 공간과 명확한 대비를 이룬다. 공간 자체가 퀴어한 경우도 있고 괴물의 실천으로 퀴어성을 획득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의 방은 헨리-엘리자베스 커플의 방과 미장센 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된다. 〈드라큘라〉의 관은 그 자체로 경계를 뛰어넘는 공간이며, 〈울프맨〉의 숲 역시 짙은 안개로 인해 경계의 존재를 무화시킨다.
헨리와 조수 프리츠 친밀한 거리감.
ⓒ 영화 〈프랑켄슈타인〉, 제임스 웨일, 1931.
감옥 같은 방에 감금된 채 괴로워하는 괴물.
ⓒ 영화 〈프랑켄슈타인〉, 제임스 웨일, 1931.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이 탄생하는 곳은 외딴곳에 있는 망루인데, 헨리는 이곳을 “아무도 내 비밀을 엿볼 수 없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결혼을 앞둔 엘리자베스의 방문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이곳에서 헨리는 남자 조수 프리츠와 단둘이서 지낸다. 둘이서 함께 보냈을 수많은 밤이 영화 안에서 다 재현되지는 않는다. 다만, 연인 관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가까운 두 인물의 친밀한 거리감이 생략된 시간을 보충한다. 프리츠는 헨리가 명령하는 작업에 대해 여러 번 두려움을 드러내지만, 그의 말에 순종하는 충실한 조수이다. 그러나 괴물이 살아난 이후 프리츠는 지나칠 정도로 괴물에게 적대감을 표출한다. 프리츠는 괴물을 내버려 두라는 헨리의 말도 거부하고 온몸으로 괴물에 대적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카메라는 프리츠와 괴물의 격렬한 싸움 장면을 꽤 오랫동안 포착하는데 비스듬하고 어딘가 뒤틀린 듯한 표현주의적인 세트에서 횃불을 휘두르는 프리츠의 모습은 위태로우면서도 절박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화면 우측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좌측 벽에 생기는 그림자는 두 인물을 압도하며 장면에 대한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 갇혀 지내는 벽장과도 같은 방 안에서 헨리의 두 동성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프리츠와 괴물은 죽음의 결투를 벌인다. 사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미장센은 곧은(straight) 벽과 기둥으로 이루어진 헨리의 집과 비교할 때 더욱 기묘(queer)하다.
드라큘라 백작의 관이 놓여있던 선박 지하에서 발견되는 랜필드.
ⓒ 영화 〈드라큘라〉, 토드 브라우닝, 1931.
지하 납골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 영화 〈드라큘라〉, 토드 브라우닝, 1931.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의 방은 ‘관’이다. 드라큘라 백작은 해가 떠 있는 낮 동안 자신의 관에서 잠을 잔다.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이지만, 관의 존재가 그의 죽음을 환기한다. 불멸의 삶과 죽음이 그의 관 안에 공존한다. 이 관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카르파티아 산맥에 위치한 고성(孤城)에서 런던으로 가는 선박의 밑바닥, 런던의 지하 납골당으로 계속해서 이동하며 공간의 경계를 넘는다. 한편, 드라큘라 백작의 관은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깊숙한 곳에 감춰지는데, 그 깊이감은 영화에서 여러 번 강조된다. 랜필드가 드라큘라 백작의 관이 있던 선박의 밑바닥에서 구조되는 장면의 강렬한 부감이라든지 드라큘라 백작이 미나와 함께 지하 납골당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끝없는 계단을 부각하는 롱쇼트가 그 예이다. 드라큘라 백작은 자신의 약점인 관을 사람들로부터 감추고 태양으로부터 최대한 몸을 숨기기 위해 깊은 그림자 속에 숨어든다. 조명 하나 없는 트란실바니아의 성이나 지하 납골당은 다양한 형태의 램프가 빛을 밝히는 시워드 가의 저택과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드라큘라 백작이 거주하는 장소만큼이나 그가 위치하지 못하는 공간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연이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드라큘라 백작을 의심하던 반 헬싱 박사는 우연히 그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드라큘라 백작의 반영은 거울 안에 위치하지 못한다. 거울에 반사되는 상의 부재는 그가 자연의 법칙에 구속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드라큘라 백작은 빛의 영역이 아닌 그림자의 영역, 비이성과 비논리의 영역에 위치한다. 보이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드라큘라 백작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시워드 저택의 질서에 기묘한 틈을 만들어낸다.
〈울프맨〉의 래리는 탈보트 가문의 저택에 자기만의 방이 있지만, 늑대로 변하는 밤이면 자신도 모르게 숲으로 향한다. 이 숲은 탈보트 가문 소유의 사냥터이기도 하지만 시야가 제한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가문의 영향력이 온전히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탈보트 가문의 상속자였던 두 아들은 모두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숲의 안개는 귀족 가문의 특권을 어느 정도 무력화시킨다.
한편, 숲은 타로와 손금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읽는 로마니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로마니들은 직선적인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정주하지 않고 유랑하며 끊임없이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이다. 이러한 로마니들의 공간 안에서 래리가 늑대인간으로서 정체화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백작, 〈울프맨〉의 늑대인간 래리가 모두 창문을 뛰어넘어 서로 다른 두 공간의 경계를 이동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창문을 통해 하객이 모여 있는 1층을 지나지 않고 바로 신부 엘리자베스의 방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드라큘라 백작 역시 박쥐의 형태로 창문을 지나 희생자 루시의 침실로 침입하고, 래리는 늑대의 모습으로 밤새 숲을 헤맨 뒤 창틀을 뛰어넘어 자신의 방으로 복귀한다. 이처럼 창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박쥐에서 인간으로, 래리는 늑대에서 인간으로 형상을 바꾼다. 이들은 형상의 변화를 통해 자신들의 접근을 통제하는 벽을 뛰어넘고 창을 통과해 공간의 경계를 무화시킨다.
나가는 글
이상의 글에서는 1930-40년대 할리우드 호러영화 속 괴물의 퀴어성을 그들의 시공간적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이와 같은 ‘퀴어한 읽기’는 종종 ‘과잉 읽기’ 또는 ‘왜곡된 읽기’로 호도되곤 한다. 그러나 벤쇼프는 “퀴어한 읽기는 ‘대안적인 읽기’, ‘희망적이거나 의도적인 잘못 읽기’ 또는 ‘읽기 대상에 대한 과잉 읽기’가 아니며”, “대중 문화 텍스트와 관객들의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복잡한 범위의 퀴어성을 인식하고 분명하게 표현한 것에서 비롯된다.”20)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특히, 영화 제작 검열 제도인 헤이즈 코드가 시행되고 있던 1930-40년대의 할리우드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퀴어성을 재현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은 “서브 텍스트를 활용하거나 함축적인 루트를 통하는”21) 암시적인 방식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헤이즈 코드가 시행되고 1년 뒤인 1931년에 제작된 〈프랑켄슈타인〉에 분명하게 식별 가능한 퀴어 인물은 등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성 조수인 프리츠나 괴물의 섹슈얼리티는 여전히 모호하며, 심지어 약혼자 엘리자베스와 결혼을 앞둔 헨리 프랑켄슈타인조차 이성애 규범에 비추어보았을 때 완전히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성의 도움 없이 생명의 탄생을 시도하는 헨리의 광적인 집착은 결국 실체를 갖춘 ‘괴물’을 탄생시킨다. 꼭 헤이즈 코드 시대의 얘기가 아니라도 여전히 많은 영화 안에서 재현되는 퀴어성은 “분명하게 자신을 밝히기보다는 텍스트와 등장인물들의 가장자리에 숨어있어야”22)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함축적인 재현이 다시 대중문화에서 퀴어성을 해석의 벽장으로 가두게 된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관객들의 능동적인 ‘퀴어 읽기’ 수행이 가능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2022년 공포영화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인 셔더(SHUDDER)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퀴어 포 피어 Queer for Fear〉(2022)를 공개한다. 여기에는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1999)와 〈캐리〉(2013)를 연출한 킴벌리 피어스, 〈사탄의 인형〉(1988)부터 〈처키〉(2021-2024) 시리즈까지 처키 프랜차이즈 전체의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돈 맨시니, 〈한니발〉(2013-2015) 시리즈를 제작한 브라이언 풀러 등 다양한 퀴어 창작자들이 출연해 호러 장르 안에서의 퀴어 재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입을 모아 할리우드 역사 안에서 퀴어 재현에 가장 적합한 장르는 호러였음을 증언한다. 이때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객관적인 분석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기억에 가깝다. 그러나 주인공이 아닌 괴물에게 자기 동일시를 했던 어린 시절의 관람 경험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이들의 증언은 도리어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관객의 실제 관람 경험을 관람 당시 그대로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많은 퀴어 관객이 호러영화를 관람할 때 자신을 괴물이나 빌런의 자리에 위치시켰다는 증언은 의미심장하다. 앞서 함께 살펴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백작, 〈울프맨〉의 늑대인간 래리는 각각 불타는 망루, 런던의 지하 납골당, 안개 낀 숲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벤쇼프가 말했듯, 모든 것이 끝나고 밝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주인공 그리고 이성애자 관객과 달리 괴물과 퀴어 관객은 “그림자 세상―최악의 경우에는 동굴, 성, 옷장, 그리고 문화적 헤게모니 안에서 가장 소외되고 억압된 자리―의 영원한 거주자로 남는”23)다. 그러므로 퀴어 관객들은 “괴물의 역경을 훨씬 개인적인 관점에서 경험하게”24)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호러영화 속 괴물은 창작자뿐 아니라 괴물 자기 자신에 의해, 그리고 관객에 의해 퀴어한 존재, ‘퀴어 괴물’이 된다.
김우진(우디)
영화글쓰기모임 쓰담과 퀴어영화모임 헝클의 리더. 영화를 매개로 한 느슨하지만 다정한 공동체를 꿈꾼다.
본 글은 비온뒤무지개재단 2024 이창국퀴어연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1) 원문의 ‘Monster queer’를 이 글에서는 ‘퀴어 괴물’로 번역한다.
2) Harry M.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Homosexuality and the Horror Film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7), 27.
3) 할리우드 호러영화와 괴물 영화에 내재된 퀴어적인 요소는 고딕 소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브 코소프스키 세즈윅 Eve Kosofsky Sedgwick은 『남성들 사이: 영문학과 남성 동성사회적 욕망 Between Men: English Literature and Male Homosocial Desire』(1985)에서 “고딕 소설은 영국에서 남성 동성애와 밀접하면서, 비교적 뚜렷한 연결성을 가진 첫 번째 소설 형식이다.”라고 말한다. 세즈윅은 고딕 소설의 첫 번째 물결을 만든 작가들 중 많은 수가 오늘날의 용어로 ‘호모섹슈얼’―비록 그 당시에는 ‘호모섹슈얼리티'라는 용어가 알려지지 않았었지만―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Eve Kosofsky Sedgwick, Between Men: English Literature and Male Homosocial Desir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5) 91. Quoted in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17.
4)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36-37.
5) 괴물의 죽음으로 이성애 규범이 회복되는 서사는 퀴어한 존재들이 공포 또는 박해의 대상으로서의 ‘괴물'로 취급받는 데 기여하기도 했으나, 고전 호러영화들(특히 제임스 웨일이 연출한 영화들)이 동성애 혐오와 검열을 피하면서 퀴어한 주체를 재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괴물의 죽음과 이성애 커플의 재결합이라는 철저히 이성애 중심적인 서사 구조에도 불구하고 퀴어 관객들은 러닝타임의 대부분 동안 활약하는 퀴어 괴물에게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37)
6) Eve Kosofsky Sedgwick, Epistemology of the Closet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0), 85.
7) 이 관점에 대해서는 알프레드 킨제이의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킨제이는 성적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의식과 수용을 장려했지만, 그것을 위해 더 많은 이성애적 인구로부터 구별되는 별개의 동성애적 인구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확립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킨제이는 성적 지향을 연속체로 특징지음으로써, 대부분 사람의 성적 욕망이 단지 하나의 섹스 범주에 속한 일원들에게 배타적으로 향한다는 널리 퍼진 신념에 도전했다." 미미 마리누치, 권유경⋅김은주 역, 『페미니즘을 퀴어링!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이론, 실천, 행동』, 봄알람, 2018, 29쪽.
8)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38-40.
9) 〈드라큘라〉(1931)의 미나 시워드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10) 〈울프맨〉(1941)의 래리 탈보트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11) “이에 핼버스탬은 “출생, 결혼, 재생산, 죽음이라는 삶의 전형적 지표” 밖에서 퀴어의 하위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집중한다.” J. Halberstam, In a Queer Time and Place: Transgender Bodies, Subcultural Lives (New York University Press, 2005), 2; 앨리슨 케이퍼, 이명훈 역,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오월의봄, 2023, 106쪽에서 재인용.
12) Halberstam, In a Queer Time and Place, 153; 앨리슨 케이퍼, 위의 책, 106쪽에서 재인용.
13) Halberstam, In a Queer Time and Place, 5.
14) 호러영화에서 죽은 줄 알았던 괴물의 생존을 암시하는 결말은 흔하다. 하나의 작품 속에서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시리즈 안에서 뻔뻔할 정도로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난다. 가령, 〈프랑켄슈타인〉에서 불타는 풍차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듯 보였던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에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등장한다.
15) 속편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괴물을 예수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반복적으로 십자가 성물이 병치되는가 하면 이번에 군중에게 붙잡힌 괴물은 아예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나무에 묶여 세워진다. 실제로 당시 영화 제작 검열을 실시한 영화제작규정관리국(Production Code Administration)은 괴물에게 종교적 상징이 사용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51.
16) 흔히 ‘집시’로 알려진 유랑 민족. 최근에는 역사적으로 비하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던 ‘집시’라는 표현 대신 ‘롬인’ 또는 ‘로마니’ 등으로 대체하여 사용한다.
17) 남자 로마니 벨라 역은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 역을 연기한 벨라 루고시가 맡았다.
18) Karl Schoonover, “Wastrels of Time: Labouring Body, The Political Spectator and The Queer”, in Slow Cinema, Tiago de Luca and Nuno Barradas Jorge eds.,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6, 162; 김경태, 「동시대 한국 퀴어 영화의 정동적 수행과 퀴어 시간성: 〈벌새〉, 〈아워 바디〉, 〈윤희에게〉를 중심으로」, 『횡단인문학』 6호, 2020, 14쪽에서 재인용.
19) Halberstam, In a Queer Time and Place, 1.
20)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15
21)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14.
22)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14.
23)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13.
24) Benshoff, Monsters in the Closet, 13.